질문을 그치고
“왜 그래야 합니까?”
“왜 나만 그래야 합니까?”
이런 질문들은 나의 10-20대를 압도했다.
학교를 다닐 때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가족관계에서도 늘 저렇게 질문했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것,
반이성적인 것,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까지..
나는 끊임없이 주님께 질문했고
주님과 늘 씨름하듯
'나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보세요' 라며
따지고 들었다.
또한 납득할 수 없다는 핑계로 불순종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주님은 그때 나의 태도를 보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 땐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시간들이었다.
다른 제사 기구보다 무거운
돌판이 든 법궤를 하나님께서는
수레에 싣지 말라고 하셨다.
반드시 레위인들의 어깨에 매어서만
이동하라고 명령하셨다.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다윗은 ‘궤에 손을 댄 웃사의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철저히 순종했다.
나아만장군이 나병에 걸렸을 때,
엘리사는 요단강에 가서 7번 씻으라고 명령한다.
나아만장군은 다메섹에는 강이 없냐고
겨우 강에 가서 씻으라는 말이나 들으러
여기까지 먼 길을 온 줄 아냐고 발끈했다.
아마 선지자 엘리사가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며
자신에게 안수하여 줌으로써
병을 낫는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종의 권면을 마지못해 받아들여
요단강에서 7번 씻은 나아만은 병 고침을 받는다.
하나님은 때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하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은 태도를 보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태도를 보고 계셨다.
태도에 나의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모두 드러난다는 것을
그 분은 알고 계셨다.
태도가 곧 거룩이라는 것을.
다윗이 하나님 앞에 보인 태도는
다윗을 왕이라는 자리로 이끌었다.
왕이 되기 위해
더 많은 것은 얻기 위해
거룩한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사랑하면
질문을 그치고
기꺼이 순종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종종 복음이에게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이라는 전제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현재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요구한다.
나의 부탁은 주로 사소한 것들,
나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나의 부탁을 군말없이 들어주는
복음이의 태도를 통해
사랑을 확인받고 싶기 때문이다.
주님도 내게 그런 사랑을 요구하신다.
찬양하고, 말씀에 아멘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사랑 고백말고
전심을 다한 사랑,
하나님만을 향한 성결의 사랑을
나의 태도로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깨닫는 요즘이다.
나의 교만과 아집으로
더디고 느리게 하나님을 알아가지만
기다려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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